대한불교 보각종 종정(宗正) 보각 큰스님을 친견한다는 설레임에 심장이 콩닥거린다. 지하철을 타고 명장역에 내려 출구를 나오니 여름 햇살이 따가워 겨드랑이에서 땀이 맺힌다.

건물 3층을 올라가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법당 한켠에 나이가 지긋하신 스님 한 분이 나를 반긴다. 금세 장식한 탓에 조금은 흐트러져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꾸며놓은 조촐한 웅장함(?)에 공경의 마음이 든다.

덜 익은 감이 떫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모양새는 늙은 감에 감히 비하리.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어색한 분위기에도 맑음의 향기를 뿜어내면서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설레이는 마음을 다스리고 부처님께 공경의 삼배를 드린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정사인데도 법당안은 속세와는 사뭇 달라 마치 법문을 전파하는 공간 같았다.

분위기 탓일까, 큰스님의 향기가 경건(勁健)의 자세로 나를 움추리게 한다. 귀한 큰스님과의 친견인데도 긴장감은 사라지고 마치 이웃집 아저씨 같은 만남 같아 조금은 난처해지기까지 한다.

그것도 잠시, 큰스님의 이야기에 귀가 쫑긋 선다. 분위기 탓일까, 딱히 그렇지는 않을텐데 한참을 큰스님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또한 큰스님으로부터 풍기는 지혜의 정갈스러움 때문인가 싶다.

대한불교 보각종 종정(宗正) 큰스님은 부처님들께서 종교의 기본 이념인 우주가 창조된 진리를 최첨단과학으로 깨달아 팔만사천대장경을 결집한 원본을 어릴 때부터 사려(師旅)하게 사유한 분이다.

학창시절 최첨단과학인 양자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시절인연이 도래되어 늦은 나이인 60세에 출가해 20년 간 스승도 없이 혼자서 수행의 길을 택해 정도(正道)인 정법(正法)으로 방등12부경(方等十二部經)의 원본을 서론과 본론, 결론을 내려 주석한 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큰스님은 현재 정토에서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받은 선남자선여인들이 오직 원력을 세워 아라한과(阿羅漢果)와 벽지불과(僻支佛果)를 6개월 간 수료해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받은 인과(因果)의 응보(應報)에서 벗어나 사후(死後)에는 극락세계에 태어나길 지극 정성으로 서원하고 있다.

통영에서 태어나 학업을 정진하다 우연인지, 필연이지 늦게 출가한 큰스님은, "작금의 모든 불교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해 설법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부처님을 모시는 모든 수행자들은 정도(正道)인 정법(正法)으로 제대로 설파해 힘들어 하는 중생들의 고뇌를 녹여야 되지 않겠냐"고 일갈했다.

아울러, "불교에 심취하는 것이 아웅다웅 살아가는 각박한 도시생활의 도피처가 아닐지는 몰라도 앎은 함께 공유해야 하며, 진정한 정법(正法) 전파로 중생들에게 복(福)을 선사해주는 것도 불교에 몸을 담고 있는 수행자들의 몫이다"라고 전언했다.

'내 설법으로 중생들아! 이 세상의 모든 업보를 씻고 또 씻으라'는 큰스님의 말씀이 감격스러운 것은 또 왜일까? 비록 덜 꾸며진 공간에서 전하는 큰스님의 말씀일지라도 '자기의 삶을 예지할 수 있고, 또 깨울칠 수 있다면 이 또한 성불에 가까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작금에 들어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세상이 온통 혼탁스럽다. 이러한 사회적 충격으로 인간의 가치 영역 역시 하루가 멀다시피 자꾸만 변하고 있다.

이처럼 중생들의 커다란 아픔에 큰스님의 마음은 더 급한 것 같아 보였다. '알면서도 설파하지 않는 지식은 진정한 앎이 아니다'라는 큰스님의 고집에서,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깨닫지 못한 중생을 제도하라'는 엄함과 포근함을 함께 느낀다.

아무튼, 많은 중생들의 아픔을 달래려고 이토록 애쓰는 큰스님의 가슴앓이에 고개가 숙여진다.

큰스님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가볍다.

큰스님이 중생들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알려준다. '지금의 시련은 업보의 변제라고 여겨라. 윤회해서 다음에는 큰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니 이 또한 얼마나 행복한 일이 아니냐'고...

대한불교 보각종 종정(宗正) 보각 큰스님,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이룰 개척자(開拓者)임에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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